2012/05/18 01:38

간송 <진경시대 회화대전> memo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간송 미술관 전시.
10시에 도착했는데도 꽤 기다려서 봐야했다.

그림만큼은 같이 간 사람들 모두 감탄에 감탄! 

2만원짜리 도록을 고민고민하다 구매하지 않은 관계로 인상 깊었던 그림들 여기에라도 남겨두야겠다. 
네이버 미술 검색에서 잡히는 것들만 링크.(순위는 아님)

면으로 표현된 산세가 인상적. 우측 하단에 그려진 조그만 다리가 마음을 끌었다.

나월불폐는 '나무 가지에 걸린 달을 보고 짖지 않다' 라는 뜻. 제목은 그러한데 개는 정면을 향하고 있다. 제목의 서사와 그림의 서사 사이의 (약간의) 불일치가 매력적.  

혜원의 그림에는 묘한 구석이 있더만. 기생에게 인사하는 비구니라니. 

좋았다기 보다는 특이했다. 프레임을 가득 채워 그린 것도 그렇고, 분위기가 뭔가 이국적. 어떤 우화를 바탕으로 그린 작품인 듯. 전시장에 적혀있던 그림 제목은 '척재제시'였다.

제목을 적어오지 않아서 이 그림이 맞는지 모르겠다. 허공에 머무는 산! 이 그림 옆에 전시된 그림도 좋았음. 심사정 이름을 외우려고 계속 심상정을 떠올림. 그외 정선,<풍악내산총람도> 조영석,<주려대주>등도 내가 꼽은 베스트. 

번외. 버팔로 66, <크리스티나 리치>
저녁에 본 영화 '버팔로 66'. 영화 보는 내내 크리스티나 리치 '정말 예쁘다'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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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8 02:52

슬픈 보편성 책 이야기


“이럴 때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보지도 알지도 못했던 타인이 실은 같은 핏줄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가슴 설렘과 닮았다. 역사도, 지리적·기후적 조건도, 문화도 전혀 다른데 같은 문구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건 바로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요네하라 마리의 설렘은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다. 유럽에서 아메리카, 아프리카, 중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문화권 사이에서, 혹은 동양과 서양, 기독교와 이슬람 등 평소에는 이분법적으로 인식되는 문화권 사이에서 동일한 의미의 속담이 널리 존재하고 회자되어왔음을 눈앞에서 확인하는 경험은 모종의 짜릿함을 선사한다. 게다가 ‘아르마딜로가 모로코이 거북을 “등딱지 자식”이라 욕한다’(베네수엘라), ‘뱀은 자신이 구부러져 있다는 걸 모르고 낙타 등이 굽었다며 바보 취급한다’(위구르족) 처럼 같은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도 각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개성 있는 속담을 마주할 때면, 인류의 ‘보편적 진실’이 담긴 재기 넘치는 아포리즘을 향한 여정은 한층 재미를 더한다.

요네하라는 책을 이루고 있는 스물아홉 개의 장을 유사한 구조로 구성했다. 먼저 장삼이사의 일상을 배경으로 한, 대부분 음담패설에 가까운 이야기로 천연덕스럽게 운을 뗀 후, 그 이야기에 들어맞는 전 세계의 속담들을 소개한다. 작가는 거침없이 속담을 늘어놓으면서 좀 더 거시적인 사례로 자연스럽게 시선을 넓혀 가는데, 많은 경우 일본 사회 내부와 국제 사회에서 권력을 쥔 자들의 행태를 속담을 인용해 비판하면서 장을 마무리한다.

“미국이 특히 이슬람 색채가 짙은 국제 테러리즘과의 싸움을 계속 연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게 이 전략에 딱 맞는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국제 테러리즘이라는 허구의 정체는 미국의 취약한 경제인 것이다. ‘유령의 정체는 알고 보니 마른 억새더라’라는 이야기랄까.”

이러한 각 장의 구조를 통해 개인에서 사회로, 다시 세계로 이어지는, 인간 행동이 빚어내는 모든 국면에서 속담이란 언어적 원소가 추출되었고, 다시 침투하고 있음을 역설한다. 결국 요네하라는 한 권의 책을 통해 시공간의 경계를 넘어 펼쳐져있을 뿐 아니라 동시대의 삶 곳곳에 편재하고 있는 거대한 보편성의 바다를 탐색하고 재현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물론 이러한 보편성의 확인이 꼭 즐겁기 만한 경험은 아니다. 어찌 보면 그것은 보편성의 굴레에 갇힌 인간의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대면케 하고, 초월과 평온을 갈구하지만 늘 좌절에 부딪히고 마는 존재의 한계를 투사하는 것 같아 일종의 슬픔마저 불러일으킨다.

‘남의 집 암탉이 제집 거위보다 크다’(불가리아), ‘목구멍보다 큰 걸 삼키면 숨이 막힌다’ (소말리아) 등 부질없는 인간의 질투와 탐욕을 암시하는 속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유구한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수없이 반복되어온 인간의 자기 파괴적인 욕망, 그리고 그 결과로 빚어졌을 온갖 사단이 아른거리는 것 같다.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은 구체적인 인간사 사건들에서 그 원형만 귀납적으로 뽑아낸 뒤, 위트 있게 다듬은 문구일 뿐이지만, 그 이면에는 속담의 탄생에 기여한 수많은 이들의 피와 고뇌, 회환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비록 후대의 사람들은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말라는 교훈적인 목적에서 생성되고 회자되어왔을지라도 진정 그 목적을 달성한 속담이 존재할 지는 의문이다. 보편적인 욕망일수록 그만큼 강렬하다는 사실을, 지금껏 자신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속담들의 역사가 증언하고 있으니 말이다.

요네하라의 시선도 종종 속담의 표면적인 메시지를 넘어 속담의 형성과정에 배어 있는 인간의 어떤 숙명을 향한다. 유럽에는 유독 ‘멍청한 우리 편이 적보다 더 무섭다’(러시아), ‘적은 물리치고, 벗은 경계하라’(이탈리아)와 같이 자신의 편이나 벗을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속담이 많은데, 작가는 “왜 이토록 벗을 신뢰하지 말라는 훈계가 많을까” 자문하면서 “그래도 신뢰할 수 없는 벗, 의지할 수 있는 자기편을 구해 마지않는 인간의 업보가 어른거려서 안타깝다”고 말한다. 

또 ‘가족을 화해하게 만드는 거짓말이 가족을 깨뜨리는 진실보다 낫다’(세네갈), ‘굽은 길 버리지 말고 곧은 길 걷지 마라’(캄보디아)처럼 윤리나 이상의 추종 보다는 현실적인 처세를 강조하는 속담이 많다는 사실은 어떠한가.

“어느 나라에서든 이토록 공상적인 꿈 이야기보다 실리에, 아름다움보다는 좋은 맛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관용구가 많다는 건 거꾸로 인간이 얼마나 실리를 잊고 꿈같은 공상에 빠져들기 쉬운 생물인지 말해주는 게 아닐까.”

모든 인간관계에서 초연해 ‘진공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 한, 이 책을 읽는 동안 특정 속담에 빗대어 자신의 처지를 상기하지 않을 독자는 없을 듯하다. 어떤 이들은 닮은꼴 조상의 모습에서 위로를 받을 지도 모르지만, 어떤 이들은 어리석고 비루한 누군가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쓴웃음을 짓게 될 것이다. 인류의 슬픈 보편성을 반영하는 속담의 역사는 그렇게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유유히 반복되고 있다.

재미있는 건 요네하라 자신도 예외 없이 속담의 세계가 은유하는 보편성의 굴레 안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의 행태를 누구보다 날카롭게 비판하는 그이지만, 책을 읽다보면 한때 또 다른 ‘제국’으로서 이웃 나라에 적지 않은 누를 끼치고도 진지한 반성은 시작조차 못한 일본의 현실은 얼마나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요네하라 특유의 톡톡 튀는 말투를 잠시 빌려보자면, ‘의사 제 병 못 고친다’랄까.


* SPACE 2012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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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3 01:26

사람, 향기 memo


대학 동기 중에 스물 다섯 살 L형이 있었다. 카이스트에 다니다 자퇴를 하고 인문계열로 다시 입학한 사람이었다. 스무 살의 눈에 스물 다섯 살은 어찌나 어른으로 보이던지. 

지금 생각해도 L형은 스물 다섯 살 치고 좀 올드한 스타일이었다. 동글동글한 얼굴, 별로 크지 않은 키에 단정한 헤어스타일, 금테 안경에 칙칙한 점퍼를 입고 다녔고, 경상도 사투리는 사근사근 했다. 여자 동기들이 말을 걸면 얼굴이 붉어지는 게 빤히 보일 정도로 숫기가 없었다. 그래도 남자 애들과 있을 때는 말도 곧잘하고 잘 웃는 사람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카세트 테이프를 넣은 워크맨을 듣고 있었는데, 영어 공부를 위해서라고 했다. 

그 시절 L형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곤 했다. 

원래 학교를 그만 둔 이유는 정확히 말한 적이 없는 것 같고, 인문계열로 다시 학교를 입학한 이유도 분명치 않았다. (혹은 내가 듣지 못했다.)  L형은 행정고시를 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장한 표정으로 하는 말이 남자가 스물 다섯이 넘으면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의 말투가 아직도 생생하다. 별로 친한 사이는 아니어서 L형이 인문학 공부에도 관심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카이스트를 그만두고 인문계열로 다시 입학한 사람이 기껏 목표로 삼은 게 고시 패스이고(당시는 지금처럼 고시 열풍이 극성이던 시절은 아니었다), 스물 다섯이 넘으면 남자는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이상한 말이나 하고 있으니,  그의 삶이 잘 와닿지 않았다.    

L형은 군필자였다. 남자 동기들은 "우와, 군대도 다녀오셨어요?" 감탄하며 이것저것 물었다. L형이 들려준 군대 이야기가 있다. 훈련소에 들어갔는데 동기 중에 꼴통 한 명이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조교가 뭘 시켜도 그냥 개기는 사람이었다. 옆에서는 아무리 뭐라뭐라 해도, 어르고 달래고 어떤 위협을 가해도 정말 꿈쩍도 안 하더란다. 

"야 그런데 나는 그 때 느낀 게, 사람이 향기가 난다는 게, 사람한테서 정말 향기가 나더라."
"향기가 난다는 게 뭐에요? 그 사람이 그렇게 멋있었어요?"
"아니, 멋있다는 거랑은 좀 달라. 그냥 향기가 났어. 사람한테서 향기가 나더라." 

그는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했고,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게 1학년 말이던가, 2학년 때던가...기숙사에 사는 친구 방에 놀러갔는데, 녀석이 역시 기숙사에 살고 있던 L형 방에 놀러간다길래 따라갔다. L형을 굉장히 오랜만에 본 참이었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서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독하게 고시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온라인 커뮤니티와 이메일 계정을 모두 삭제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줄곧 모니터를 쳐다보며 우리와 이야기를 나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사를 나누고 방을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스물 다섯 살짜리는 그냥 혼자였던 것 같다.  

그나마 L형과 친했던 동기 녀석도 학교를 졸업한 이후의 L형 소식은 알지 못했다. 고시는 붙었는지, 뭔가를 이루긴 했는지, 그렇게 쑥맥이던 사람이 결혼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지금 만나도 별로 공유할 얘기가 많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게 있긴하다. 마지막으로 본 순간 어딘가 어둑한 곳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만 같던 L형이 가끔 생각난다. 

L형도 그 훈련소 동기의 소식을 궁금해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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